본문 바로가기
한 달 살기 가이드

유럽 마트 물가에 놀라 기절할 뻔하다가 터득한 '생존 집밥' 노하우

by 밤서랍 2025. 12. 15.

    [ 목차 ]

한국에서는 "오늘 저녁 뭐 먹지?"가 즐거운 고민이었지만, 유럽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첫 주에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외식 한 번에 3~4만 원이 우습게 깨지는 살인적인 물가 앞에서, 살기 위해 마트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도 저는 수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파리와 런던의 마트 한복판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터득한, 굶지 않고 통장도 지키는 현실적인 '마트 정복기'를 들려드립니다.

 

유럽 마트 물가에 놀라 기절할 뻔하다가 터득한 '생존 집밥' 노하우
유럽 마트 물가에 놀라 기절할 뻔하다가 터득한 '생존 집밥' 노하우

환상 속의 유기농 라이프와 처참한 영수증의 괴리

처음 유럽 마트에 들어섰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납작 복숭아, 형형색색의 치즈, 저렴한 와인... 저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카트에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보다 식자재는 싸다던데?"라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유기농 채소와 고급 햄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받아든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식재료 값은 쌌을지 몰라도, 제가 담은 것들은 '생활'이 아닌 '사치'에 가까운 품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인의 밥상에 필수적인 마늘, 파, 고추 같은 향신 채소들은 현지 마트에서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파 한 단에 3천 원, 마늘 몇 알에 2천 원 하는 가격표를 보고는 "이 돈이면 차라리 햄버거를 사 먹는 게 낫겠다"는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무작정 현지인처럼 먹어보겠다며 샀던 딱딱한 빵과 짠 햄은 며칠 못 가 입에 물렸고, 결국 라면 생각이 간절해져 한인 마트로 달려가 비싼 돈을 주고 신라면을 사 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관광객 놀이'를 멈추고 철저하게 '현지 생활자'의 시선으로 마트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쁜 포장의 브랜드 제품 대신, 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찾기 시작했고, 낱개 포장된 채소 대신 흙이 묻은 채 덩어리로 파는 못난이 채소 코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비로소 '가성비'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7시, 노란 딱지가 붙는 시간을 노리는 하이에나 전략

제가 마트를 공략하는 핵심 시간대는 바로 '마감 직전'이었습니다. 한국 대형마트처럼 유럽의 마트들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신선 식품에 가차 없이 할인 스티커를 붙입니다. 영국의 테스코(Tesco)나 세인즈버리(Sainsbury's), 프랑스의 까르푸(Carrefour) 등 대부분의 마트에는 'Reduced' 또는 'Anti-gaspi'라고 적힌 전용 코너가 있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산책을 핑계로 이 코너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정가 5유로짜리 훈제 연어를 1유로에 득템하기도 했고, 샌드위치나 샐러드 같은 즉석식품을 반값에 쓸어와 다음 날 아침으로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먹다 남은 걸 줍는 것 같아 쭈뼛거렸지만, 현지 할머니들도 장바구니를 들고 그 앞에서 진지하게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건 절약이 아니라 현명한 소비야"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노란 딱지가 붙은 고기를 사 와서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 날은 그야말로 파티였습니다.

 

할인 품목을 중심으로 식단을 짜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 실력도 늘었습니다. 떨이로 산 버섯이 많으면 버섯 리조또를 하고, 토마토가 싸면 토마토 스튜를 끓였습니다.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늘 뭐가 싸지?"를 먼저 확인하고 메뉴를 정하는 순서의 전환. 이것이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여준 결정적인 비결이었습니다.

한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지 식재료와 타협하는 법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매운맛'과 '국물'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 마트에서 고춧가루나 국간장을 찾는 건 모래사장 바늘 찾기였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한국 고춧가루 대신 현지 마트 향신료 코너에 있는 '카이엔 페퍼(Cayenne Pepper)'나 '파프리카 가루'를 섞어 쓰니 얼추 비슷한 매운맛이 났습니다. 국간장 대신 서양식 수프의 베이스가 되는 '치킨 스톡' 큐브를 활용하면 떡국이나 미역국 맛을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삼겹살이 먹고 싶을 땐 비싼 'Pork Belly' 정형육 대신, 지방이 적당히 붙은 덩어리 앞다리살을 사서 직접 썰어 구웠습니다. 상추 대신 샐러드용 로메인을 씻어 쌈을 싸 먹었고, 쌈장은 된장 대신 현지 콩 통조림을 으깨고 고추장(이건 한국에서 가져옴)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완벽한 한식은 아니었지만, 현지 식재료로 재해석한 이 정체불명의 퓨전 한식들이 오히려 한 달 살기의 묘미가 되었습니다.

 

결국 '잘 먹고 사는 것'은 돈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캐리어에 햇반을 꽉 채워 오는 대신, 현지 쌀(Short grain을 사야 한국 쌀과 비슷합니다)을 냄비에 안치고 밥을 짓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해외 살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어느 나라 마트에 떨어져도 30분이면 일주일 치 식량을 5만 원 안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